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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정주영 회장 명언 가계도

by j-mini 2021.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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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정주영 회장 명언 가계도-

 

안녕하세요!

 

오늘은 현대그룹의 창업자이자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기업가

 

아산 정주영 회장 명언 가계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제가 여러 기업가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기도 한데요.

 

정주영 회장의 명언 가계도를 살펴 보면서

 

여러 가지 눈여겨 볼만한

 

정보를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대그룹을 모르시는 분들은

 

아마 없으실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지금의 현대그룹이 있기까지 과연

 

정주영 회장이 어떠한 노력을 했고

 

명언을 남겼는지 가계도와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정주영 회장이 어떠한 업적을 남겼는지

 

실제 스토리와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은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큰 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삼성그룹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최고 자산을 보유한 그룹으로 알고 계실텐데요.

 

 

대한민국에서 세계 10위 안의 부자로 꼽힌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현대 정주영 전 명예회장입니다.

 

1995년 포브스 선정 세계 9위 부자로 정주영 회장이 선정 되었었는데요.

 

이 당시 1위는 빌게이츠, 2위는 워렌 버핏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역대급 기업의

 

창업주들은 대부분 애초에 자본이 많았었습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자수성가로써

 

국내 1위 기업을 달성한 유일한 기업입니다.

 

대한민국 기업가 정신을 제대로 보여주는 창업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주영 회장에 대한 가장 유명한

 

일화를 몇가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어렸을 적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요.

 

정주영 회장의 꿈은 이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울로 가출을 시도했는데요.

 

가출을 하면 잡혀오고 또 서울로

 

도망가면 다시 잡혀오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정주영 회장의 아버지께서 소를 판돈을 훔쳐서 몰래

 

또 가출하는 일 까지도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고 서울에 정착했습니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젊은시절에

 

다른 기업의 창업주와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다고 하는데요.

 

정주영 회장은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쌀가게에서 청소 배달 일 등을 하며,

 

젊은시절을 정말 열정적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주영 회장이 정말 힘들게

 

큰 석재등을 운반하며 일한 곳이 있었는데요.

 

바로 지금 서울 고려대학교의 공사장 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정주영 회장은

 

서울 신당동에 작은 쌀가게를 하나 차렸는데요.

 

이때 그의 나이는 23살 이었습니다.

 

그 후 정주영 회장은 돈을 모아서

 

자동차 수리공장을 인수 하게 됩니다.

 

 

 

 

 

 

그 유명한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 이었는데요.

 

정말 안타깝게도 약 20여일 만에

 

공장에 불이 나게 됩니다.

 

안에 있던 수리중인 자동차들도

 

다 불에 타버리고 공장도 재가 되었으니

 

이제 정말 막막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보통 사람들같았으면 이 상황에서

 

희망이란건 없었을 거라고 생각 했겠는데요.

 

 

 

 

 

정주영 회장의 마인드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렇게 공장이 전부 전소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주영 회장은

 

자신이

돈을 빌렸던 사람을 찾아가서

다시 한번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이때 정말 드라마 같은 일화가 펼쳐 집니다.

처음에 돈을 빌려줬던 사람이

정주영 회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은 지금껏 사람만 보고

돈을 빌려줬었으며,

담보 또한 잡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여기서 자신이 돈을 돌려 받지 못한다면 자신의 인생에

오점을 남기게 되는 거라며

다시

한번 정주영 회장에게 돈을 빌려줍니다.

이 후 정주영 회장은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 라는 정비공장을 설립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라는 이름의 첫 시작입니다.

 

여기까지 현대 정주영 회장의

 

생애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 보았는데요.

 

이어서 현대 정주영 회장

 

명언 어록에 대해서도 한번 짚어 보겠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젊었을적 매우 성실하고

 

열정적인 삶을 사셨던 분으로 유명한데요.

 

그 때문에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셨다고 합니다.

 

담배와 커피 같은 기호식품에 대해서

 

회의적이셨다고 하는데요.

 

담배 그거 배도 안부른데 연기만 뻑뻑피워서 뭐하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만큼 요정도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더하려고 해도 더 할게 없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다하는 최선

 

이라는

 

말씀을 남기셨는데요.

 

이 정주영 회장의 명언은

 

정주영 회장의 인생을 관통하는

 

명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어서 정주영 회장 가계도를 살펴 보겠습니다.

 

정주영 회장의 가족 분위기는 화목했던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 만큰 가족간의 관계를 매우 중시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무리 업무로 인해 바빠도

 

가족들과의 아침식사는 꼭 챙겼다고 합니다.

 

지금 까지 아산 정주영 회장 명언 가계도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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